러닝크루 민폐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서초구는 반종운(반포종합운동장)에서 5인 이상 함께 달리기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러닝을 사랑하고, 오랫동안 해왔던 사람으로서 안타깝습니다. 러닝 열풍이 올해까지인 이유를 적어보겠습니다.
러닝크루 민폐
1. 20~30명씩 우르르 모여서 달리기
2. 비키라고 고함 지르기
3. 상의 탈의하고 달리기
4. 무리한 사진 찍기(?)
언론에서 지적한 러닝크루 민폐는 위와 같습니다. 20~30명씩 모여서 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도심에서 그렇게 달리면 누가 봐도 욕 먹을 게 뻔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트랙에서 발생했습니다. 일부 대형 러닝크루와 유료 클래스가 트랙을 점유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반포종합운동장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비키라고 고함 지르는 건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보행자를 지나갈 때 서로 부딪칠까봐 “지나가겠습니다”, “전방에 보행자” 등을 외칩니다. 뜻이 어떻든간에 수십 명이 단체로 외치면 일반인 입장에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화도 개선해 가야 합니다.
상의 탈의는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물론 불편한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러닝 외에도 헬스장에 가면 상탈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무리한 사진 찍기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크루원들끼리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는 것 뿐인데, 언론에서 억지로 끼워맞추기 위해 이유를 넣은 것 같습니다.
5인 이상 달리기 금지가 생긴 이유
정확히 말씀드리면 러닝크루가 주 원인이 아닙니다. 바로 유료 강습 업체들 때문입니다. 러닝 열풍이 불자 기존 강사들은 냄새를 맡고 너도나도 대규모 러닝 클래스를 열었습니다. 반포종합운동장 외에도 도심 곳곳에서 최고 40~50명의 인원을 한 번에 가르쳤습니다.
돈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트랙을 이용하는 다른 러너들은 안중에도 없었겠죠. 그래서 다른 러너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사유지가 아닌 공유지에서 돈 한푼 안들이고 돈을 버는 게 배아팠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일부 러너들이 이들 유료 클래스의 공유지 점유를 막고자 지속적인 민원을 넣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반종운에서 5인 이상 함께 달리기가 금지됐습니다. 그러나 이는 민원을 넣은 러너들의 바람이 아닙니다. 민원이 수용되고, 규정이 생기는 바람에 신고를 한 러닝크루들도 함께 뛰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입니다. 제살 깎아 먹기 또는 제 꽤에 속아 넘어간 격이 됐습니다.
러닝 열풍이 올해까지인 이유
코로나 이후 운동 열풍이 불었습니다. 헬스에서 등산, 등산에서 골프, 골프에서 테니스, 그리고 테니스에서 러닝으로 넘어 왔습니다. 허세 문화라고 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러닝크루 문화는 코로나 전부터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힘을 응축했습니다. 응축된 힘을 2023년 기안84가 대청호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MBC 나혼자산다)하며 터트렸습니다.
평소 마라톤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기안의 감동 스토리를 보며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올해 션이 각종 기부 마라톤을 하며 단단하게 굳혔습니다. 실제로 요즘 한강에 나가보면 작년보다 달리기를 하는 인원이 2~3배는 늘었습니다. 걷던 사람들도 뛰기 시작했습니다. 마라톤 대회 접수는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하고, 나이키 알파플라이3와 아시스 슈퍼블라스트2는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전설의 희귀템이 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러닝 열풍은 올해까지입니다. 바로 기존 러너들과 한탕주의에 빠진 사회구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5인 미만 러닝 금지라는 명제 아래 러닝크루 민폐에 대한 내용이 대대적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일부 러너들은 러닝이 그만큼 인기 있기 때문에 네거티브한 내용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뉴스는 확대 재생산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이 안 좋아지는 역할을 합니다. 아직 러닝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유입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 러너들간의 갈등입니다. 마스터즈 러너들은 국내 엘리트 러너들의 형편 없는 기록을 은근히 무시합니다. 엘리트 선수이기 때문에 기록 자체로만 보면 넘사벽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황영조(바르셀로나 금메달), 이봉주(애틀란타 은메달)라는 거대한 산이 있습니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2시간 10분 벽도 깨지 못하는 현재 엘리트 마라토너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반대로 엘리트들은 자신들보다 기록이 좋지 않은 마스터즈 러너들이 더 인기와 명성을 얻고, 돈도 벌기 때문에 부러워하고 질투합니다. 5인 미만 달리기 금지가 생긴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아주 벗어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한탕주의에 빠진 사회구조입니다. 2024년 8월 중순에 열린 전마협(전국마라톤협회)이 하남 나이트런을 개최했습니다. 좁은 주로에 1만2천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뒤엉키면서 수 백명이 탈진하고, 30명 넘는 사람들이 구급차에 실려가거나 응급조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대회가 열린 미사조정경기장은 주로가 좁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2천~3천명이 맥시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천절에 열린 국민마라톤대회의 하프 완주 메달에 HAFE(하페)라고 쓰여져 있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무도 검수하지 않고,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우리나라 마라톤은 여기까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러닝을 사랑하고 오랫동안했습니다. 러닝크루도 몇 개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질책을 할 땐 해야 합니다. 러닝크루 민폐가 생긴 부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개선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러닝 열풍이 올해까지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려서 러닝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두서 없이 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